가끔 익산에 온 것을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더 빨리 올걸’ 하고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렇겠죠. 작년 이맘때쯤 익산에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산책을 자주 했습니다. 주로 익산역 인근에 ‘중앙동’으로 불리는 동네를 걸었는데 다른 도시에도 동일한 지명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에요. 가까운 군산이나 전주, 먼 부산이나 서울에도 중앙동이 있죠.
고향이라 그런지, 얇게나마 도시를 공부해서 그런지 중앙동을 생각하면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과거 역을 중심으로 익산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인데요. 누군가는 이 일대를 ‘명동만큼 사람이 많았다’, ‘거리를 걸을 때 어깨에 사람이 치이곤 했다’며 회상하곤 합니다. 물론 지금은 택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흘러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발길이 더뎌진 구도심으로 변모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그땐 좋았지’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을 회상하는 곳으로 소환되곤 합니다. 암튼 중요한 건 그런 과거는 뒤로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제 눈길을 끈 동네라는 점입니다. 한동안은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40년 된 가게에서 점심을 먹는 일상을 보냈는데요. 덕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여행자처럼 다니던 1년 전과 달리 골목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습니다. 이웃이 생기고 공동체가 생긴다는 의미를 몸소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도 중앙동에 관심을 가지셨다니 매우 기쁘고 흥분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아마 ‘너도?’에 가깝겠네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상대방의 눈 속에서 발하곤 하던 ‘너도?’의 빛. 아마 오랜 시간 사회혁신을 연구해서 그렇겠죠. 다른 지역 구도심에서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많이 만났을 테니까요.
고향이라 익숙한 저와 달리 낯선 익산을 어떻게 바라보셨을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도시를 익히는 건 초심자의 특권이거든요. 레벨1의 선물 같은 시기를 어떻게 누리셨나요. 저보다 빨리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 뿌듯한 마음입니다. 회사에 새로 들어온 후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때 이런 기분일까요. 겨우 3일 먼저 익산에 왔지만, 고향 버프가 있으니 으름장을 놓아봅니다. 엣헴. 그런 의미에서 저를 선배님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찬영 후배님(?)에게 익산 구석구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시 중앙동 얘기로 돌아가자면 오랜만에 산책하며 최윤경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작년에 찍은 인터뷰 사진이 담긴 액자를 전달하기 위해서요. 최 선생님은 1945년생으로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학원을 운영하는 분인데 19살에 사업을 시작하고 12권의 책을 낸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연륜 깊은 N잡러입니다.
액자를 건네자 선생님은 고맙다며 <재난의 길목에서>라는 시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 반응이 시큰둥했는지 또박또박 본인이 “직접 쓴 시”라고 강조하며 이야기하더군요. 익산역 폭파사건 당시 겪었던 심경을 적은 시고 익산역 앞에 시가 적힌 비석도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절판돼 익산에서는 대한서림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 현재로서는 본인의 마지막 시집이고, 이걸 쓸 당시에는 익산시에서 인터뷰도 여러 번 왔다고 전했습니다. 덧붙여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선생님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2시간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의 초능력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너무 많은 어른을 만나면 잠시 아득해지기 때문에 재빨리 짐을 챙겼습니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또 놀러 와!” 아마도 선생님은 이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인 모양입니다. 익산을 탐방하는 시간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은데요. 특히 무언가 몰두하고 집중하는 사람에게 나오는 후광 같은 거 말이요. 인터뷰할 때 최윤경 선생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발견했었습니다. “네, 자주 올게요. 시집도 감사해요.”하고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혹시 시가 궁금하실까 하여 앞머리를 옮겨봅니다.
우리는 겪었습니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의 불행을 삼천초목도 울고 간
익산역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를
생과 사의 엇갈림 속에서 가냘픈 한 마리 사슴처럼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었습니다
무어라 말 하랴.. 이 비극.. 이 고독을..
다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들을 인도하는 따뜻한 동포애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 최윤경, 재난의 길목에서 中
미용학원을 나와 시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과일을 좀 사려고요. 제철 과일이 궁금할 땐 종종 시장으로 갑니다. 시장 정문에 ‘매일청과’ 현수막이 달린 1톤 트럭이 있는데 제 단골 과일가게입니다. 근처에 가면 “여- 스쿠터 아가씨 또 왔네.”하고 푸근한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의 성함은 김상구입니다. 스쿠터 아가씨는 김상구 사장님이 저를 부르는 별명인데 흰색 스쿠터를 타고 중앙동을 열심히 돌아다닐 때 안면이 터서 단골이 되었습니다.
상구 사장님은 1964년생으로 과일 장사만 30년째 하고 있어 이 구역 달콤 감별사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시장 입구에 계시니 제 기준 중앙시장 마스코트입니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가끔 꿀사과 한 조각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 매일청과를 지날 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후배 님한테만 알려드리는 꿀팁입니다. 오늘은 약간의 수다를 마치고 딸기와 오렌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장님이 골라준 딸기가 단단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만난 중앙동의 이웃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밖에도 40년 동안 커피숍을 운영한 카페 투샷 사장님, 30년 된 시장기름집 사장님 등이 있지만 그건 차차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익산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산책하며 인사 나누는 이웃이 많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알고, 나이를 알고, 인생 스토리까지 엿듣다 보니 동네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요. 윤 후배님은 익산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까지 답장이 없으면 익산의 유일한 동료가 저인 줄로만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편지 보내겠습니다.
익산의 선배 김애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