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회차 제목은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오마주했다.
고백하건데 1년 전만 해도 SNS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사용하던 인스타그램도 여행 기록 용도가 전부였고 1년에 업로드 횟수를 세어보면 손가락 수가 남았다.
그런 내가 익산에서 살고부터는 틈나는 대로 SNS에 글을 올렸다. 오늘은 어디를 갔고, 무슨 생각을 했고, 앞으로 뭘 할 건지 페이스북, 인스타, 블로그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업로드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쌓다 보면 결정적인 한 방이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2022년 5월 11일, 인스타그램 통해 한 메시지를 받았다.
「애림 씨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7년도에 희망이음 프로젝트 때 만났던 지하얀 입니다. 인스타 게시물을 통해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종종 지켜봤어요.
다름이 아니라, 애림 씨가 지역 문화 기반 콘텐츠를 만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 연락드립니다. 저도 요즘 지역 문화 콘텐츠 제작 양성 과정을 수강하고 있고, 혹시 같이 얘기해보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편할 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얀은 5년 전 대외활동에서 만난 동갑내기다(사실 메시지를 받을 때는 동갑인 줄 몰랐다). 대학교 초입, 각 지역의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서포터즈였는데 우리는 지역도 팀도 달랐기 때문에 네트워크 날 정말 잠시 만났다. 그리고 각자의 대학교로 돌아가자마자 서로를 깨끗이 잊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분명하게 다른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마치 기다려온 듯한 반가움이었고 이 메시지가 결정적 한 방일 수도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하얀 씨.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지역 콘텐츠에 관심 있다니 반가운 마음입니다. 괜찮으시면 내일 줌으로 얘기하는 거 어떠신가요? 관심사랑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면 어떨까 해서요.」
그리고 다음 날 온라인에서 만났다. 5년 만이었다. 초반엔 그동안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는 데 시간을 썼다. 서로 살아온 얘기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나누는데 그 순간 얼마나 행복하고 흥이 났던지.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여러 눈빛과 마주했다. 그 눈빛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일관적으로 내뿜던 메시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너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명이 “저 이거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상대의 눈 속에서 발하곤 하던 ‘너도?’의 빛. 그 빛을 내뿜으며 나머지 한 명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저도 하고 싶었어요. 같이 해요!”
그 뒤론 정말 매주 만났다. 하얀은 천안에 나는 익산에 있었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친 세대에게 물리적 거리는 크게 문제요소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사업을 구상했다. 자연스레 서로의 동료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면에 유능했다. 누군가 협업의 손을 내밀면 마음의 문을 이미 반쯤 열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사실 혼자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협업을 통해 인생을 살아간다.
‘우정’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이런 형태의 우정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확신컨대 하얀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하는 일에 반의반도 못 했을 것이다. 사진과 영상이라는 고난도 작업을 동시에 훌륭히 해낸 것은 물론이고 내 눈이 낡아서 놓친 부분을 꼼꼼하게 챙겨준 동료다.
나는 우리가 친목으로만 점철된 사이가 아니라서 좋다. 연애니 다이어트니 화장품이니 으레 다루던 화두엔 관심일랑 없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지 고민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우리가 하는 돈 얘기, 사업 얘기가 어떤 형태로든 유의미하게 작용한다는 걸 안다.
이제 다음 기획은 자연스레 그와 함께 상의한다.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무엇을 묻거나 묻지 않을지, 우리는 한 몸처럼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다. 나의 시선이 닿지 못한 곳엔 이미 그가 있다. 하얀과 나란히 서면 나는 훨씬 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