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림 : 50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언니에게 가게를 물려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임경숙 : 사실 내가 할 생각이 없었는데 예전에 언니가 가게를 운영할 때 시장에 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언니 나이가 65세 정도였는데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자식들이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접으려고 하는데 언니가 내가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언니 생각에 내가 하면 가게를 살려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김애림 : 언니분이 선구안이 있었나 봐요.
임경숙 : 물려받을 사람이 필요했었죠. 계속 오는 손님이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조금씩 배웠어요. 주로 깨를 볶는 데 불 조절 기술을 가르쳐줬는데 이 기술이 예민한 부분이 많거든. 꼼꼼하게 배우느라 5년이나 걸렸네요.
김애림 : 중요하게 가르친 부분도 있었나요?
임경숙 : 처음엔 힘에 부치니까 전쟁터에 온 기분이더라고. 대충하고 싶은 날도 있었는데 항상 장사하는 건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정직하게 장사하는 방법을 익혔지.
김애림 :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기술을 얻으신 거군요. 참기름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임경숙 : 먼저 깨를 깨끗이 씻어서 석유 불에 은은하게 볶아요. 잘 볶아진 참깨를 널어서 식혀주죠. 이 과정에서 볶아지면서 발생한 유해 물질이 어느 정도 날아가요. 뜨거운 그대로 압착하면 유해물이 기름 속으로 스며들게 되거든.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깨를 천천히 식혀주는 거에요.
김애림 : 깨를 잘 식혀주는 일도 볶는 일만큼 중요하군요.
임경숙 : 맞아요. 이제 어느 정도 식혀진 깨를 기름틀에 넣고 압착해요. 여기 입구 보이죠? 여기서 기름이 나오는 거에요. 고소한 향기가 나죠? 여기서 끝이 아니고 한 번 짜진 깨를 꺼내서 확인해요.
김애림 : 잘 짜졌나 확인하는 건가요?
임경숙 : 보통 한번 짜면 깨가 뭉쳐지지 않고 흩어지거든요. 깨에서 기름이 다 짜지지 않았다는 증거에요. 그럼 깨를 스팀으로 살짝 쪄줘요.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압착 해주는 거죠. 보통 처음보다 두 번째가 더 많은 기름이 나와요. 저희는 두 번까지만 짜요. 그래야 신선한 기름 맛을 유지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병에 잘 담으면 돼요. 그럼 완성이지.
김애림 : 기름 한 병을 얻는데 정말 많은 기다림과 노고가 필요하네요.
임경숙 : 한 병 나오는데 20분 정도? 이렇게 설명해서 그렇지 하다 보면 금방 짜요. 대신 그동안은 집중해서 일해야 해요. 안 그럼 맛이 없거든. 처음에는 불을 약하게 놔서 은은하게 볶다가, 말릴 때는 또 불을 줄여요. 다시 볶을 땐 불을 쎄게 놓고 빠르게 볶죠. 마지막으로 다시 불을 천천히 줄여서 계속 볶아요. 뭉근하게. 깨 안쪽까지 열기가 잘 전달되도록.
김애림 :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볶아서 그런지 올 때마다 손님이 많아요.
임경숙 : 여기가 시장 2층에서 단골손님이 제일 많아요. 우리 집은 기본 30년이고, 20년이고 그래요. 어떤 손님은 22살에 시집와서 지금 85살 잡수셨다고 하더라고. 언니 때부터 단골손님인 거죠.
김애림 : 그러면 손님이 아니라 친구일 것 같아요.
임경숙 : 그쵸. 때로는 친구고 때로는 엄마같이.
김애림 : 친구처럼 엄마처럼 좋네요. 그럼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임경숙 : 여기 손님들이 다 오래된 분들이라 가족사까지 다 알아요. 자녀가 몇 명이다, 이번에 시집을 가고, 뭐 손주도 낳고.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오랜만에 와도 자녀분 애기 낳았어요? 하고 물어보고. 소소한 이야길 자연스럽게 나누죠.
김애림 :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일을 오래 하는 마음이 궁금해요.
임경숙 : 사실 처음에는 이 일이 지치고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근데 한 해가 갈수록 일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일을 안 할 땐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지?’그랬는데 지금은 감사해. 하루하루 즐겁고. 해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해요. 새로운 마음으로 꾸준하게 볶아요. 그럼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