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이 우거진 들판에 겨우 1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은 이리역이 생기면서 빠르게 커져갔어요. 3년 만인 1915년에 벌써 일본인 2,053명, 조선인 1,376명이 모여 살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바뀐 셈이죠.
물론 조선인들에겐 그런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았을 거에요. 일본이 호남선 철길을 낸 목적은 분명했으니까요. 한반도의 가장 기름진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더 쉽고 빠르게 실어가려는 뜻이 깔려있었어요.
호남선은 경부선이 지나는 대전에서 시작해 충청남도 논산과 강경을 거쳐 전라북도 함열에 이르렀어요. 여기서 황등과 이리 그리고 김제평야를 지나 정읍에 이르고, 다시 전라남도 목포까지 이어졌어요. 전체 길이는 261.1km에 달했죠.
호남선 가운데 강경-이리를 잇는 기찻길이 열리던 날, 이리-군산을 잇는 군산선(지선)도 같이 열렸어요. 그러니까 전주와 익산, 옥구의 일본인 농장에서 생산된 쌀들이 군산선을 따라 군산항에 차곡차곡 모일 수 있게 되었단 뜻이에요. 호남선이 모두 개통된 뒤엔 이리를 비롯해 논산, 김제, 태인, 정읍, 함열, 부용, 전주, 삼례, 동산 등에서 1933년 한 해에만 무려 20만 톤이 넘는 쌀이 군산으로 실려왔어요. 쌀을 가득 실은 기차가 호남ㆍ군산선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조선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