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륵사지석탑 이야기 잘 읽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셨네요.
익산에 이사 오기 두 달 전쯤 충남 서천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익산 미륵사지에 들렀던 기억이 나요. 12월 마지막 날이었어요.
밤새 두텁게 쌓인 눈 위로 벌써 주인 없는 발자국들 여러 개가 석탑을 향해 나 있었어요. ‘이 이른 아침에 누가 다녀갔을까’, 생각했죠.
나지막한 미륵산 아래 홀로 우뚝 서 있는 석탑이 생각보다 웅장해 놀랐어요. 장엄하다는 말이 어울리겠네요. 탑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높이는 낮아졌어도 탑 위로 켜켜이 쌓인 1400년 세월의 무게가 저를 압도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언젠가 이 탑에 얽힌 이야기를 모조리 찾아내 글로 써보겠노라고. 올해 봄이 가기 전에 시작해볼까 해요. 아주 긴 작업이 될 수도 있겠죠.
지난 편지에 익산을 다룬 책이 없다고 했는데, 아니었어요. <봉인된 역사 –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와 조선 농민>(윤춘호)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2017년에 나왔는데 제목에 ‘익산’이 들어있지 않아 미처 몰랐어요. ‘카페 춘포’ 주인장이 소개해준 덕에 늦게나마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에요. 선배님은 알죠, 대장촌이 춘포의 옛 이름이란 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행자를 위한 책은 아니에요. 저자인 윤춘호 SBS 기자는 춘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는 자신의 고향이자 부모님이 오랜 세월을 살았던 고향 마을 대장촌의 잊힌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해요. “대장촌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거기에 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밝혀보고 싶었다”고 서문에 적고 있어요.
작가가 특히 주목했던 건 일제강점기에요. 아직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임에도 그 시절 마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고 해요. 그는 그 이유를 일본인 지주와 조선인 농민이 뒤엉켜 살았던 대장촌의 독특한 환경에서 찾았어요. 대장촌의 많은 것들이 바로 그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니까요.
“일본인들이 농장을 세웠고, 일본인들이 철도를 놓았으며, 일본인들이 학교를 열었고, 일본인들이 전기와 상수도를 들여왔다. 뱀처럼 구부러진 만경강을 직강화한 것도, 15년에 걸친 대역사를 통해 초대형 제방을 완공해서 이 마을의 영원한 숙제였던 홍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도 일본인이었다.”(서문)
그러니까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일본인 지주들의 이야기가 묻히면서 그 맞은편에 서 있던 조선인 소작인의 이야기도 함께 묻혀 ‘봉인’되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에요. 왜 고향 마을 이야기를 쓰면서 그리 무시무시한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