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기 가봤어?”이건 제가 자랑하고 싶은 장소를 발견했을 때 반복하고 싶은 말들 중 하나입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너무 좋은 곳을 발견하면 친구들한테 사진을 보내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죠. “너도 가봤어?” 그럼 친구의 대답을 기다리고 안 가봤다면 다음에 함께 하기를 기약해요. 그때는 정말 그것으로 족해요.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한때 만나는 사람마다 미륵사지를 추천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2학년 현장 학습을 통해서였는데요. 그때는 보수 정비를 마치기 전이라 다소 투박하고 먼지 날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성인이 된 후엔 발길이 뜸해져 서먹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익산의 유명세를 빛내주는 그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그것으로 그치기엔 아까운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장소는 세월만큼 이야기를 갖고 이야기가 쌓여 역사가 된다고 하죠. 미륵사지의 스토리를 하나씩 파헤치다 보니 웅장함도 느껴집니다. 왕도(王都)의 꿈이 서리고, 금자탑보다도 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미륵사지석탑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백제 제30대 무왕 2년에 창궐한 국가 사찰입니다. 세월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절터만 남은 이곳에서 홀로 자리를 지킨 문화유산인데요. 국보 제11호의 자랑스러운 넘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고’와 ‘최대’의 수식어가 한 번에 붙습니다. 어떤 장소에 '가장 오래된'이 붙으면 괜스레 뒤돌아보게 됩니다. 긴 역사를 간직한 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 때문일까요. 세월의 모양을 따라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 정말이지 독보적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
1,400년 전 백제의 뛰어난 손기술과 심미안을 보여주는 석탑인데요. 현장에 가서 직접 보면 가슴 한켠에서 분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탑 일부가 무너지자 일제가 제멋대로 복원한다며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놨기 때문입니다. 당시 흉물스럽게 발라놓은 시멘트가 무식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까지 겹쳐 더 아리게 느껴집니다.
다행히 문화재청이 미륵사지의 원형을 찾기 위해 해체 복원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떼어낸 콘크리트만 185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해체한 석재는 깨지고 떨어진 부분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다시 사용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3,000여 개의 돌을 메우고, 틀을 보강하고, 새 돌을 덧붙여 다시 쌓아 올렸습니다. 미세한 콘크리트까지 모두 제거하겠다는 복원 의지가 드러났죠. 안전 진단부터 해체 보수의 전 과정이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총 20년 걸렸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수로는 최장기간입니다.
복원 과정에서 치과 치석 제거용 기구로 콘크리트 가루 한알 한알을 세밀하게 벗겨냈습니다. 느리지만 튼튼한 마음으로요. 덕분에 80%가 넘는 기존 부재를 재사용하고 부족한 부분도 재료의 유사성을 위해 인근 채석장에서 채취해 보강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흔적에 차이가 있지만, 시간의 때가 묻으면 옛 부재와 잘 어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