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 이사온 지 꼭 1년하고 하루가 지나가고 있어요.
주말 사이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제 새벽에 아들이 알려줬어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시합을 함께 본 뒤에 자정이 조금 넘어 나란히 누웠는데, “오늘이 익산에 온 지 1년 되는 날이야” 하길래 깜짝 놀랐어요. 한 번도 그런 얘길 나눈 적이 없었는데...
이제 막 열한 살이 된 꼬맹이가 가끔은 아주 든든한 동료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물론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꼭 1년이 된 어제 고마운 분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어요. 중앙ㆍ송학ㆍ인화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센터장님들. 약속 날짜를 전해 받았을 땐 모르고 적어뒀는데, 생각해보니 1년째 되는 날이었어요. 안 그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세 분을 만나게 된 거죠. 낯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신 고마운 분들이에요.
달력을 뒤져보니 김 선배님과 제가 처음 만났던 날이 4월 5일, 식목일이었어요. 익산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였죠. 처음 만난 곳은 어느 멋진 카페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질 않네요. 그날 둘이서 무슨 얘길 나눴는지도... 풋살하다 다쳐 깁스한 다리 숨기려고 저랑 만나는 내내 앉아 있던 건 기억납니다. 아마 첫 만남이라 조금 어색했겠죠.
그 이틀 뒤에 곽현석 센터장님을 만나러 같이 갔었죠. 혼자 계실 줄 알았는데 다른 두 센터장님들이 함께 기다리고 계셔서 몹시 당황했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우리 다섯이서 ‘신생대반점’에 모여 고량주를 나눠 마셨죠. 제가 한창 그집 양장피 맛에 빠져 있던 때였어요.
그 뒤로 세 분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들을 많이 받았죠. 강의도 여러 번 하게 됐고, 책방을 열 만한 좋은 공간들도 함께 둘러봤어요. 분에 넘치는 환대였습니다. 낯선 곳에 와서 이런 인연을 맺기란 쉽지 않을 텐데, 저는 아주 운이 좋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받기만 했으니, 이제부턴 조금씩 갚아나갈 생각입니다.
그날 반가운 연락을 해주신 분들이 또 있어요. 따뜻한 봄이 오면 미륵사지와 익산토성을 안내해주기로 하신 원광대 M 교수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해오셨어요. 그러더니 곧 문을 열 책방을 응원한다며 커피와 티라미수 쿠폰을 보내셨죠. 오늘이 익산에 온 지 1년째 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도 놀라시더라구요. 또 멀리 제주로 가신 H 센터장님도 그날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셨어요.
모두들 1년 동안 애썼다고 마음으로 나를 응원해주고 있구나, 혼자 생각했어요. 그렇게 1년째 되는 날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