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로 최근에 읽었던 책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책이야말로 내가 왔던 길을 되짚어주는 좋은 매개가 되니까요. 선물 받은 책인데요.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입니다. 네, 그 유명한 ‘원미동 사람들’을 쓴 양귀자 선생님이 맞습니다.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화자 되는 글을 쓴다는 건 부럽고 질투 나는 일입니다. 양귀자 선생님의 생생한 글을 읽으면 나는 질투할 깜냥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지만요.
저는 책을 읽기 전에 작가 소개부터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걸어온 곳을 되짚어보면 책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느껴지곤 하거든요. 그날도 자연스럽게 책장 맨 앞부터 펼쳤다가 반가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양귀자 선생님이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셨더군요. 내가 사는 곳의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내적 친밀감이 확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학교 근처 골목길, 지금도 남아있는 작은 가게를 우리가 공유했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겠죠. 같은 곳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어쩐지 호들갑 떨고 싶어집니다. 선물해준 사람도 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주지 않았을까요.
책의 제목처럼 전 가끔 인생의 모순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리역 폭발사고(자세히 보기)에 나오는 것처럼 “이리역 폭발사고에서 원인이 된 호송원 신무일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뒷돈을 요구하며 열차를 이리역에 묶어둔 철도 직원은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았다.”는 부분도 마음이 쓰여 여러 번 다시 읽은 구절입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처럼 익산에서 살아가며 탐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모순』, 양귀자). 기록하는 일은 늘 깨어 있어야 가능한 작업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사유가 절실하고 행동이 절대적인 일이죠. 매사 용기를 가지고 탐구해보겠습니다.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은 새 살”처럼 우리는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하니까요(『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찾아보니 양귀자 선생님과 더불어 자랑하고 싶은 익산 사람이 많습니다. 한동안 간장게장을 못 먹게 만들었던 『스며드는 것』의 안도현 시인도, 쥐바라숭꽃이 된 명선의 이야기가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된 『기억 속의 들꽃』 윤흥길 작가님도 모두 원광대학교 동문입니다. 후배님도 책방을 새로 열면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작가님의 서적을 한 칸에 모아둘 거라고 했었죠. 어쩌면 책장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껍고 큰 서랍장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쟁쟁한 이름들 사이에 언젠간 우리 이름이 살포시 끼기를 바라면서 이만 편지 줄이겠습니다. 오늘 낮에는 햇살이 가득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깊고 진한 햇살이었는데요. 바쁜 날들이지만 익산에서 여행하듯 살다 가자 다짐하곤 중고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익산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봄이 제 인생에서 찬란하게 찍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후배님도 조금 남은 겨울, 건강하세요.
2가 3개나 들어간 2월 22일
김애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