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모현동의 한 카페.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회의를 하고 있다. 곧이어 다른 남자가 카페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이렇게 외친다.
"여기 혹시 '29xx' 오토바이 주인 있으신가요?“
"어, 저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손을 든 사람은 회의 중이던 여자다. 당시 카페 손님은 한 팀밖에 없었고, 그래서 당연히 그들을 쳐다보며 아니 정확히는 남자들을 쳐다보며 묻던 그는 시선을 옮겨 용건을 이어갔다.
"제가 후진하면서 오토바이랑 부딪혔어요. 같이 확인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여자는 키를 챙겨 나갔다. 다행히 큰 흠집은 없어 보험처리를 따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명함은 고이 받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남아있던 이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묻는다. 기종은 무엇인지, 얼마인지, 무섭진 않은지. 여자는 익숙한 듯 질문에 대답했다. 이런 상황을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부딪힌 오토바이의 주인이다.*
* 스쿠터는 오토바이의 한 종류로 발판이 있는 탈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작은 바이크를 스쿠터라고 부르기도 하나 어폐가 있다. 내가 타는 건 ‘NIU PRO’ 모델로 발판이 있는 ‘스쿠터’가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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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스물다섯 살 무렵이었다. 당시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렌터카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 망설이던 중 알고리즘이 스쿠터 대여 서비스를 추천해줬다. 자동차의 3/1 가격이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함께 할 여행 친구로 '미노'를 만났다. 미노는 대만에서 온 50cc 스쿠터다. 대여 업체에 스쿠터를 처음 타본다고 했더니 한적한 해안도로에서 1시간가량 운전 방법을 알려줬다. 난생처음 이륜기를 운전해본 순간이었다. 처음인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도 금방 탈 수 있겠는걸?’
1시간 뒤 혼자 남겨진 나는 모험을 떠나는 사람처럼 들뜨고 설렜다. 제주 바다를 옆에 끼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차를 끌었다면 들어갈 엄두도 안 났을 좁은 골목길을 만나 따라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있었다.
오래된 구멍가게, 미장원, 방앗간 등이 이어진 마을 풍경은 시골에 살아본 적 없는 내게는 있을 리 없는 가짜 향수를 자극했다. 내 감성을 저격하는 잊을 수 없는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그날을 통해 자신감과 함께 열망이 일었다. 마음속에 스쿠터의 씨앗이 심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언젠가 ‘내 스쿠터’를 꼭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몇 년 후, 익산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소도시에 살다 보니 ‘내 동네’라고 인식하는 로컬의 범위가 확실히 작아졌다. 체감하기론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 때문인데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날이면 기다림을 잘 다스려야 한다. 수도권에선 버스 예정 시간이 정말이지 초 단위까지 나왔는데 우선 전광판 자체가 잘 없거니와 있어도 정확하지 않았다. 길에서 쓰는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택시를 애용했다.
택시도 교통수단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매일 이용하기엔 내 주머니 사정이 나빴다. 더 저렴하고 멀리 갈 수 있는 기동력이 필요했다. 고백하건대 구매 과정의 시작은 스쿠터가 아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택시로 이동한 것이 분해 자전거나 구경해 볼 심정으로 당근마켓을 열었다. 어떤 물건이든 그렇듯 마음에 들면 비쌌고, 싼 건 안 예뻤다.
다른 고민도 있었는데 내가 자주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라 페달로 올라가기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고심하다가 스쿠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기 스쿠터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전기 스쿠터라면 환경에도 좋고 기름값도 안 드니 좋지 않을까. 지체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구매 가능한가요?」
「지금 바로 오실 수 있으세요?」
「지.. 지금이요?」
「내일 보러 오신다는 분이 계시는데 빨리 처분하고 싶어서요. 지금 오시면 선생님께 판매하겠습니다.」
확신컨대 구매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판매자이지 않았을까. 마치 당장 사지 않으면 스쿠터와의 인연은 영영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마음을 만들어 구매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고민되는 지점은 가격이었다. 판매가는 100만 원. 해당 모델을 검색해보니 딱 시세만큼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구매하면 배송의 기다림 없이 내 품에 들어오게 된다.
택시를 하루 만 원씩 계산하면 100일만 타도 이득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그래, 일단 지르자. 영 아니면 다시 팔면 되니까. 다시 답장을 보냈다.
「저 지금 갈게요!」
100만 원짜리 21년식 전기 스쿠터, 니우 프로. 나는 드디어 ‘내 스쿠터’를 갖게 되었다.
스쿠터를 타고 기동력을 얻게 되자 내 세계가 확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뚜벅이에게 발길이 잘 안 닿는 20~30분 거리에 있는 장소도 더 쉽고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재밌고 자유로웠다. 내 힘으로 직접 갈 수 있는 성취감도 좋았다. 정말이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스쿠터로 ‘내 동네’를 넓혀갔다. 15분 거리에 여가, 문화, 일자리 등 다양한 기능을 누릴 수 있는 자립적인 생활권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차도 한 칸을 당당히 차지하고 달린다. 단순히 스쿠터가 아닌 새로운 도시 탐방 수단인 것이다. 나만의 15분 도시를 가꿔가며 익산에서 미래를 꿈꾼다. 「아무튼, 바이크」 김꽃비 작가의 말처럼 그야말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